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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기자회견에서 진행한 하늘바람의집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2025년 8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앞
열흘의 기다림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제도로: 중증·말기 유기동물 치료체계 마련 촉구
저는 ‘하늘바람의 집’에서 유기동물 전담 호스피스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유니맘 신정화입니다. 지난 15년간 토끼와 함께 생활하며 절실히 깨달은 것은, 작고 연약한 생명이라도 그 고통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3년간 전국 각지의 구조 현장에서, 지자체 보호소에 입소한 중증 부상 동물과 말기질환 동물들을 직접 돌보며, 제도와 현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그 간극이 초래하는 고통을 정부와 사회가 진지하게 인식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현장의 실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쪽 뒷다리가 골절되어 뼈가 드러난 어린 토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응급수술이 시급했지만, 현행법은 “보호소 입소 후 10일”이라는 획일적인 보호기간을 우선시합니다. 열흘 동안 치료를 유보하는 일은 동물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극심한 고통입니다.
또 다른 토끼는 척수 손상으로 뒷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좁은 철창 안에서 10일을 버티는 동안 욕창이 악화되었고, 회복 가능성이 있던 신경조차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법이 허용하는 시점까지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위급한 상태임에도 ‘10일 보호기간’이라는 규정이 응급치료를 지연시키는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보호소의 현실도 심각합니다. 시민의 온정에 의존해 운영되는 많은 보호소는 사료 공급과 시설 유지만으로도 재정이 빠듯한 실정입니다. 이곳에서 수년간 머물다 암, 만성 신부전, 만성 심장병 등 말기질환으로 이환되는 유기동물이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호소가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 앞에서, 누구를 우선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판단하는 일은 숙련된 활동가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결정입니다.
아픈 유기동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치료받을 권리는 제도적·재정적 한계 앞에 방치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생명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실질적 대안을 제안드립니다.
첫째, ‘응급전원 조항’의 법제화입니다.
수의사의 진단서를 통해 중증 또는 응급 환축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10일 보호기간을 면제하고, 즉시 치료 가능한 보호자 또는 민간 전문기관으로 전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생명의 골든타임은 행정 편의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둘째, ‘중증·말기 유기동물 의료비 공동기금’의 신설입니다.
정부·지자체·민간이 매칭펀드 형태로 출연하는 방식으로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다면, 보호소의 재정 한계를 넘어서 실질적인 생명권 보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셋째, ‘권역별 공공–민간 연계 동물 호스피스 센터’의 설립입니다.
공공은 공간과 기본 인력을 제공하고, 민간 전문기관이 돌봄을 맡는 컨소시엄 모델을 통해 재정 효율성과 돌봄의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넷째, ‘중증 환축 관련 데이터의 투명성 강화’입니다.
보호소별로 중증 환축의 현황과 치료·안락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사회적 감시와 참여가 확대되고, 정책 개선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동물보호법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긴급성과 존엄의 가치를 법과 제도 속에 충실히 반영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대통령님, 관계 부처 여러분.
‘10일’이라는 숫자는 행정 운영의 기준일 수 있지만, 뼈가 드러난 두 다리로 고통 속에 버티는 작은 생명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희망과 회복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바람의집’ 이라는 이름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한 바람처럼 곁을 지키겠다는 저희 단체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과 소규모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변화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늘, 기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정부에 진심으로 요청드립니다.
제도와 예산으로, 법과 정책으로, 우리가 만들어 낸 구조적 고통을 함께 끝내 주십시오.
생명은 대체 가능한 물건이 아니라, 고유한 감정과 고통을 지닌 존재입니다.
치료받을 권리, 그리고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생명의 가치를 논할 자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하늘바람의집’은 앞으로도 마지막 숨을 고르는 작은 생명들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그 길이 외롭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이 함께해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 간절한 목소리가 용산의 바람을 타고, 생명 존중의 새로운 제도를 여는 작은 열쇠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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